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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북학회 회관
관리자 2011.04.10 75386

서북학회 회관 건물은 반지하가 도입된 지상 2층의 벽돌 건물인데 건물의 중앙에는 돌출된 현관부가 있고, 좌우에는 좌우 3개의 창호 배열되었다.
해방 후 소유권이 이전되면서 건국대학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1976년 도시 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처하자 1977년 해체, 1985년 지금의 건국대 서울 캠퍼스로 이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전 복원된 구 서북학회 회관은 건국대학교의 설립자의 교육 이념을 기리는 박물관인 ‘상허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 위치로 이전해오면서 기단부를 형성하는 지하층의 외벽 재료가 바뀌고, 벽돌의 쌓기 방식이 바뀌는 등 원형이 손실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중앙 탑부는 길이를 3등분하여 정방형 평면이 되게 하였는데, 1층은 주 출입구, 2층은 발코니, 3층은 원형의 창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은 돔으로 처리가 되었다.
근대문화유산을 보전하며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의 하나가 되고 있다.
서북학회는 1908년 안창호, 박은식, 유동열, 이동휘 등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출신의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애국 계몽 단체이다.
당시는 통감부의 세력이 강한 시기라 정치 단체를 표방하지 못하고 교육 운동을 목적으로 내세웠으며, 기관지인 <서북학회월보>를 간행하며 서북협성학교에 사범과를 두고 애국 계몽 운동을 펼치기 위한 교사 양성에 주력하였다. 그밖에 계몽 강연, 청년 지도 등을 통하여 민중 계몽과 민족 실업 진흥, 항일 교육 구국 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1910년에는 일진회가 한일합병을 지지하고 나섰을 때 맹렬하게 반대 운동에 앞장섰으며, 그해 4월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을 당하였다. 서북협성학교는 서북학회 해체 이후 오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폐교되었으나 1922년 협성학교로 재개교하였다. 협성학교는 광신정보산업고등학교의 모체이다. 서북학회 회관이 준공된 것은 서울 낙원동 1908년 1월에서 6월 사이였다. 건축 당시에 1898년 한미전기회사 사옥(종로 장안빌딩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음)이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사진 및 설명 출처: http://www.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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